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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는 사촌동생이 저랑 회사에 있습니다

휴가를 내기 위해, 저는 회사에서 4년 동안 가상의 친척 한 명을 만들어냈습니다. 우리 회사는 개인 사정으로 휴가를 내려면 사장님이랑 머리싸움을 하며 기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유독 병가만큼은 ‘빛의 속도’로 승인해 줘요. 사장님이 자기 몸을 워낙 끔찍이 아끼는 사람이라, 병 옮는 걸 극도로 무서워하거든요. 시간이 흐르면서 동료들은 다들 ‘꾀병’의 달인이 되었습니다. 사장님은 회사 풍수가 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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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내기 위해, 저는 회사에서 4년 동안 가상의 친척 한 명을 만들어냈습니다.

우리 회사는 개인 사정으로 휴가를 내려면 사장님이랑 머리싸움을 하며 기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유독 병가만큼은 '빛의 속도'로 승인해 줘요. 사장님이 자기 몸을 워낙 끔찍이 아끼는 사람이라, 병 옮는 걸 극도로 무서워하거든요.

시간이 흐르면서 동료들은 다들 '꾀병'의 달인이 되었습니다. 사장님은 회사 풍수가 안 좋은 거 아니냐며 의심까지 했죠. 어떻게 뽑을 땐 다들 건강한 청년이었는데, 입사 몇 달 만에 다들 병약한 주인공처럼 변하냐면서요.

저도 한때는 꾀병에 심취했었습니다. 그러다 한번은 제가 거짓말로 병가를 내고 여행을 간다는 걸 엄마가 아시게 됐어요. 엄마는 "병을 핑계로 삼으면 진짜 병이 찾아오는 법(한국에서는 이를 '부정이 탄다'고 합니다)"이라며 엄하게 경고하셨죠. 그 말을 듣고 왠지 찝찝했는데, 정말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크게 앓아누웠습니다. 그 뒤로는 무서워서 절대 병을 핑계 삼지 않아요.

그때부터 친구랑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핑계가 가장 확실할까?

친구가 분통을 터뜨리며 말하더군요. 자기 아버지가 정말 형편없는 사람이라, 휴가 내고 싶을 때마다 "아빠가 편찮으시다"고 둘러댄다고요. 오늘은 골절, 내일은 뇌출혈... 심리적 가책도 전혀 없다면서요.

거기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마침 아프리카로 해외 취업을 간 사람의 글을 읽었던 터라, 제 머릿속에서 한 인물이 탄생했습니다. 바로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사촌 여동생'입니다.

이 사촌 동생을 처음으로 '가동'했던 날, 저는 아주 진지하게 사장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집안에 사촌 동생이 하나 있는데, 졸업하고 부모님이랑 대판 싸운 뒤 혼자 아프리카로 일하러 갔거든요. 이번에 드디어 돌아오는데, 제가 가족 대표로 공항 마중을 가야 합니다. 이틀 정도는 동생이랑 깊이 대화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설득도 해야 하고요."

사장님은 흥미로운 가십거리를 포착했다는 듯 아주 재미있게 듣더니, 입술을 삐죽이며 묻더군요. "자네 집엔 갈 사람이 그렇게 없나?"

저는 한숨을 쉬며 답했습니다. "가출한 뒤로 저하고만 연락하거든요. 게다가 아프리카에서 좀 기밀스러운 일을 했던 터라, 주변에 많이 알려지면 곤란해서요."

사장님은 눈을 가늘게 뜨며 경계하더군요. "무슨 일인데?"

저는 정색하며 말했습니다. "그건 정말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날 이후, 이 사촌 동생은 제 '만능 휴가 티켓'이 되었습니다. 어떨 땐 병원에 같이 가줘야 하고, 어떨 땐 가족 간의 갈등을 중재해야 했죠.

문제는 사장님이 이 사촌 동생을 너무 깊게 각인한 나머지, 가끔 근황을 묻는다는 겁니다.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기 위해 저는 사촌 동생의 '인물 설정'을 통째로 짜서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두었습니다. 다음에 말실수하면 안 되니까요.

어느덧 입사 5년 차, 제 '사촌 동생 메모장'은 1,000자에 육박합니다. 가끔은 저도 멍해질 때가 있어요. 우리 집에... 진짜 이런 사촌 동생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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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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